대한수면호흡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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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무호흡을 바라보는 정신건강의학과적 관점

수면무호흡을 바라보는 정신건강의학과적 관점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방영롱

수면 무호흡증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에게 생소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어떤 분들은 이비인후과 질환으로 여기기도 하고, 심지어 불면증 외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수면무호흡은 수면 장애에서 불면증 만큼이나 흔하고 관심과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필자는 수면 장애를 전공하면서 수면다원검사 판독을 해오면서 불면증 외에도 다양한 수면질환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수면 동안 우리의 몸과 뇌는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며, 깨어있을 때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특히 호흡과 그와 관련된 각성은 수면의 질에 아주 중요하다. 그러던 중에 개인적으로 수면 무호흡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는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다.

2019년 한 제약회사의 불면증 신약에 대한 다기관 임상 시험 3상 연구를 의뢰받아 맡게 되었다. 광고를 통해서 치료받지 않은 불면증 환자들을 연구 참가자로 모으게 되었는데, 불면 증상이야 워낙 유병률이 높아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졌다. 다른 원인으로 인한 불면증을 배제해야했기 때문에 신약을 투약하기 전에 수면다원검사를 시행했다. 그런데 지원한 5명 모두가 수면무호흡증을 진단받아 참여가 배제되었다. 물론 그 기준이 5만 넘어도 배제될 만큼 엄격한 기준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원자 모두 수면 무호흡증에 대한 병력 청취를 통해 어느정도 걸러낸(?) 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적잖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더더욱 불면 증상만으로 약만 처방하고 다른 원인을 찾지 않는 태도에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불면 증상이나 수면 장해 (disruption) 현상은 면밀한 병력 청취를 통해 일차적 유발 원인을 찾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그래야 필요 없는 약을 장기간 복용하지 않아도 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특히나 수면 무호흡증은 불면증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그동안 일반의나 전문의 상황을 막론하고 우리는 단순 불면 증상만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에게 ‘약물 처방’으로 쉽고 빠르게 처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사실 그 약물 처방은 의사에게도 일한다는 명분을 주기도 하고, 환자에게도 뭔가 치료가 될 것이라는 희망과 그것이 투영된 존재물을 받아가는 느낌을 준다. 지금도 의사를 대상으로 한 불면증에 대한 강의가 들어올 때면 ‘불면증의 약물치료’를 더 원하고 포커싱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 대다수의 의사들은 어느 질환이든간에 약물 처방의 기술이 궁금하고, 그것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렇게 해서 얼마나 많은 불면증 환자들이 약에 심리적 의존(psychological dependence)과 습관화(habituation)이 되어가는지 알게되면… 약물 천국이라는 실로 암담한 한국 불면 치료의 현장을 느끼게 된다. 더군다나 수면 무호흡은 원래도 본인이 느끼지 못하기도 한데다가, 불면증 약을 먹으면 더 깨지 않게 되어 스스로가 이상을 못 느끼게 된다. 즉 잠에는 더 이상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뒤늦게 진단받은 수면무호흡증의 치료에는 아예 관심도 가지지 않게 된다. 진료 끝에 돌아오는 그들의 공통적인 대답은 이러하다. “선생님, 약만 그대로 주세요.” 이래서 첫 치료의 시작부터 원인 감별까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수면무호흡환자 중에서도 불면증이 동반되어 있는 환자를 COMISA (Comorbid insomnia and sleep apnea) 라고 부른다. 2021년 5월호 chest지에 실린 리뷰논문을 보면 COMISA의 치료법은 불면증 인지행동치료 (CBT-I; cognitive and behavioral therapy for insomnia)와 양압기(PAP) 치료 이다. 더불어 환자의 다양한 사회환경적 요소를 고려하고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한 환자 중심치료 (patient-centered care)를 강조한다. 예전에는 불면증 치료로 사용하는 약물과 양압기 치료를 병행하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 불면증 치료의 패러다임과 정수는 약물에서 인지행동치료로 완전히 옮겨졌다. 물론 필자도 약을 아예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CBT-I가 장단기 치료 효과가 좋은 것이 입증되었고, 약의 습관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약을 써야하는 케이스 같은 경우에는, 일단 내가 약물 처방을 시작했다면 약물을 끊는 것까지 완벽하게 마쳐야 불면증 치료가 끝났다고 여기는 편이다.

필자의 진료실에는 지금도 다양한 불면증 환자가 찾아오지만,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수면무호흡증을 동반 질환으로 진단받는 분들이 느낌상 족히 절반쯤은 되는 것 같다. 즉 COMISA가 지금은 나의 주 관심 분야이자 진료 대상인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분들하고는 많이 다르다. 불면증을 동반하고 있기에, 불면에 대한 상당한 불안과 집착을 안고 있다. 코골이를 주소로 찾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수면무호흡증을 진단받으면 당황스러워하고, 때로는 무시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양압기 처방도 쉽지 않다. 그걸 어떻게 쓰고 잘 수 있는지, 원래 안오던 잠이 더 안오게 생겼다느니 등의 컴플레인과 함께 사용 중에도 양압기와 잠에 대한 불평 불만의 연속이다. 그래서 시작부터 유지까지 남다른 설득과 상담이 필요하다. 불면증 인지행동치료와 더불어서 필요하면 약물 치료도 병행한다. 더군다나 우울 증상까지 동반되어 있는 경우, 양압기 치료의 유지는 더욱 힘들어진다. 2020년 필자가 시행한 약 1년여의 추적 관찰 연구에서, 우울증이 있는 수면무호흡환자의 경우 우울증이 없는 경우보다 양압기 치료 순응도가 9개월째부터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하였다. 이런 환자분들을 치료의 장에서 낙오없이 끌고 가는 것이 에너지와 시간 소모가 많은 일이기는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들 중에는 비만이나 과체중인 분들이 많다. 우울 증상이나 거부증 (negativism) 등으로 인하여 신체 활동이 적기도 하고, 대인관계에 대한 불안이나 불편감 때문에 일부러 집 밖을 안나가는 경우도 많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받는 약들은 대부분 졸려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을 늘리게 되고, 심지어 식욕을 증가시키는 일부 약 (depakote, olanzapine, mirtazapine 등)들도 있다. 그리고 스트레스 때문에 술에 의지하다보니 알코올 사용장애가 있는 분도 있다. 불면 증상은 정신 질환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증상인데, 여기에다가 체중 증가나 알코올로 인하여 수면무호흡까지 새로 생기거나 악화되는 것이다. 어차피 약을 먹고 있으니 잠이야 어느 정도 자겠지만, 수면 무호흡증으로 인하여 부가적으로 수면의 질은 좋지 않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있는 분들에게 수면 무호흡증 치료는 생소하다. 생소한 것은 환자들 뿐만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역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수면 무호흡증은 놓치기 십상이다. 예전에 조현병이지만 자신의 수면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한 환자분은 수면 다원검사를 통해 수면 무호흡증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그 분은 양압기를 사용하면서 수면의 질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조현병 치료제인 항정신병약 외에 부가적인 수면관련 약의 용량을 줄일 수 있었다. 기뻐하는 환자분의 얼굴을 보면 나도 제대로 된 치료를 해드릴 수 있어 더 기쁘다.

이렇듯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진료를 하면서도 수면 무호흡증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오늘도 양압기 처방을 했다. 그 분도 COMISA 인데, 부디 잘 적응해 나가길 마음 속으로 바래본다. 이비인후과 의사선생님들도 많은 수면무호흡증 환자들을 진료하시고 계신 줄 안다. 숨어있는 COMISA 를 찾아내시는데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그리고 약 처방보다 인지행동치료적 접근을 이용해 보셨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이 지면을 빌어서 전달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