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Sleep은 매년 1월, 5월, 9월 발간 예정입니다
호주수면학회 Sleep Down Under 체험기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연구원 류운경
2023년 11월 문수진 교수님, 박다희 교수님, 장효범 전공의 선생님과 호주 및 뉴질랜드 수면학회 (Sleep DownUnder 2023)에 참석하는 즐겁고 뜻깊은 경험을 했습니다. 귀한 배움과 행복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학회 발표일 아침에 4명이 함께 있는 대화방에 급한 소식이 떴습니다.
"PPT 준비해야 한다는데요?"
학회장을 꽉 채운 사람들이 발표를 경청하고 활발하게 질문하여 이에 답하는 모습은 저에게는 마냥 신기하고 흥미로운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박다희 교수님은 발표를 앞두고 무척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계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발표 차례가 되자 진지한 표정과 태도로 'Positive Airway Pressure Adherence in Children with Sleep Apnea may be Similar to Adults'라는 제목의 연구 발표를 시작하였습니다.
발표 내용을 들으면서 차트 정리를 하고 엑셀 자료를 코딩한 후 통계를 돌렸던 시간들이 생각나면서 뿌듯하고도 뭉클한 감정이 몽글몽글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AHI부터 PAP, Adherence, Compliance까지 새로운 용어 습득부터 갖은 함수를 써서 엑셀 자료를 통계에 적합하게 변형했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추적 관찰이 이어지지 않았던 환자들의 결측값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소아 자료를 최대한 살리려는 작업을 함께 했었습니다.
Ms. Adelaide: Did you expect the results of the two groups to be different? how?
Mr. Park: Hmmm... Sorry... I can't... (무슨 말이지?!?) If you send me an e-mail then, I’ll translate it and e-mail you in a week!
Ms. Adelaide: That's a very good answer!!
Symposium session: Sam Robinson Memorial Lecture - Great Debates: Is pharyngeal surgery going to become irrelevant in the era of physiology driven treatments & nerve stimulation?
흥미로운 주제의 토론이 있었습니다.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OSA)에서 Phenotype(표현형)이 중요시되면서 개인맞춤형 치료가 각광받고 있습니다. 신경 자극 치료까지 가능해진 지금 이 시대에 pharyngeal surgery의 입지와 Surgeon의 역할은 무엇일지 고민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Dr. Lyndon Chan이 수술을 중요시 여기는 이비인후과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자신을 “butcher”로 소개하며 앞치마를 착용하고 중식도 모양의 지시봉을 꺼내 준비해온 내용을 차례차례 보여주었습니다. OSA에 있어 다양한 치료약과 방법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큰 tonsil과 소아의 경우는 수술이 효과적인 방법이며 환자의 상태에 따라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자주 있기에 앞으로도 Surgeon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반대쪽 입장의 Prof. Peter Catcheside는 긴 회복 시간과 통증, 비용 문제, 그리고 효과성 입증의 어려움을 이유로 다른 대안 치료가 득세할 것으로 본다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양측의 주장과 근거가 번갈아 가며 제시되고 토론장 내의 분위기도 점차 고조되었습니다. 발표를 할 때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시각적인 자극(PPT)을 포함한 제시 방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양측 연자들 각각 청중의 관심을 끄는 퍼포먼스(셔츠를 내리면 슈퍼맨 옷이 나온다던지… 서로 멱살을 잡고 엎치락뒤치락 한다던지)를 준비해왔고 웃음소리와 감탄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다른 학회에서는 보지 못한 장면들이라 굉장히 신선했고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Adelaide는 호주 내 최대 와인 산지로 꼽힙니다. 그 중 Barossa Valley는 도시에서 가깝고 가장 유명한 와인 생산지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투어 승합차를 타고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올라가며 포도밭을 구경했습니다.
오전 10시 즈음 오크통 가득한 첫 번째 와이너리에 도착하여 와인 시음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치즈나 크래커 없이 빈속에 와인을 마시게 될 줄 몰라서 먹을 거리를 전혀 준비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와인이 굉장히 맛있었습니다. 공복에 와인만 마셔도 될까? 하는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같이 잔이 부딪히며 내는 영롱한 소리에 감탄하며 와인을 맛보았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포도밭을 보며 Adelaide가 최대 와인 산지가 된 이유, Barossa Valley의 역사, 포도의 종류, 포도밭 토양의 특징에 대한 설명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포도밭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자신 있는 요가 자세를 선보였고 와인 투어에 참가한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저희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여기에서 찍은 사진들은 정말 마음에 듭니다. 모든 사진 속 저는 와인으로 시커멓게 물든 입술로 가장 밝은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Adelaide 공항에서 차로 1시간 30분가량 떨어진 곳에 Bumbunga 호수가 있습니다. 이 호수는 소금을 좋아하는 미생물들이 내는 핑크 빛을 기본으로 물의 염도에 따라 분홍색, 흰색, 파란색으로 시시각각 바뀝니다. 전 세계 여러 핑크 호수 중 접근성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합니다. 핑크 빛 물결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건조한 계절이라 바싹 말라 하얗고 단단한 소금 바닥만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고 신나고 너무 좋았습니다!
처음 보는 풍경과 일터에서 멀어졌다는 흥분이 더해져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간 것처럼 누가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소금밭 위에서 제가 다리 찢기를 하고 문수진 교수님이 물구나무서기를 하시는 장면은 바로 제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었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사진입니다.
호주 학회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약한 호텔이 매진으로 취소되거나, 비행 스케줄이 바뀌거나, 출발 전 날 밤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 편이 결항 되거나, 처리해 놓고 가야 할 일이 갑자기 생기거나 하는 등 이대로 잘 학회 장소에 도착할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첫날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원래 해외 학회는 가기 전에 이렇게 푸닥거리를 많이 하고 가나요?"라는 저의 질문에 이미 지친 표정의 박다희 교수님이 슬픈 표정으로 답해주셨습니다. "아니오... 보통 안 그랬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호주에 도착해서 학회 일정을 소화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모든 일정은 참 무탈하게 잘 흘러갔습니다.
* Sleep DownUnder 2024: 10/16-19, Gold Coast Convention and Exhibition Center, Broadbeach, Queensland, Austrai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