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Sleep은 매년 1월, 5월, 9월 발간 예정입니다
좌충우돌 유럽수면학회(ESRS) 수면의학 전문가 시험 후기
수면호흡학회 홍보간사,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문수진
비과학을 전공하는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되면서, 흐르는 물결에 몸을 맡기다 보니, 2021년 수면다원검사 교육이수증을 따고, 대학병원에서 수면다원검사실을 운영하다보니, 수면다원검사 지도의사 승인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수면다원검사 정도관리위원회에서는 이것이 수면전문가로 학회에서 공인하는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고, 다만, 수면다원검사를 시행, 운영 및 결과를 판독할 수 있는 자질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과연 내가 지도의사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이에 2021년 및 2022년 1월호 Good Sleep 웹진에 소개한 바 있는, 유럽수면학회(European Sleep Research Society, ESRS)의 수면의학 전문가(Expert Somnologist) 온라인 시험에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명백하게, 우리나라에서 이 시험 자격증을 딴다고 이득이 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신경과에서 수면을 하는 선생님들이 아는 정도의 지식을 ESRS 시험 공부를 하다보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고, 만일 자격증을 딴다면, 지도의사로서 자신감도 더 생길 것 같아서, 2022년의 도전 목표로 삼았다.
시험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은 2021년 1월호(Good Sleep 3호)에 실린 조규섭 교수님의 글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은 개괄적인 설명보다는, 실제로 시험 준비를 하면서 난관에 부딪혔던 사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혹시라도, 다음 번 ESRS 시험에 도전할 분들을 위해서말이다.
이전에 시험 신청을 했던 선생님들의 서류를 바탕으로 온라인 시험 신청을 하였다. 서류 준비에서 미비한 자료는 없었기에, 당연히 한큐에 통과하여 시험 응시자격을 얻을 줄 알았다. 시험 응시에 드는 비용은 ESRS 멤버 등록에 필요한 164€, 시험 신청 시 600€이다(환불 불가한 90€ 및 서류 전형 통과 이후, 온라인 시험에 필요한 510€)(2022년 12월 기준, 총 105만원). 그런데 웬걸! 서류 마감 약 석 달만에, 시험 응시를 했던 우리나라 이비인후과 선생님들에게 지원 자격 검증을 위해 추가 자료를 요청하는 메일이 날아왔다. 돈을 내고도 시험 자격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니 충격적이었다. 대부분 유럽에서 National Sleep Societies에서 인증된 수면 센터에서 일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지원했는데, 한국의 수면 센터 및 한국에서 받은 수면다원검사 교육이수증은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020년, 2021년에는 한국인이라도 추가 자료를 요청하는 상황은 없었기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2022 ESRS Examination in Sleep Medicine - Additional information for approval needed
Most of the Sleep Medicine Centres of the applicants for our examination are accredited and certified by the National Sleep Societies. In addition this Sleep Medicine Centres are working with European or national guidelines. As an European Medical Society we have a wide range of contacts in all European countries, but not in the Republic of Korea.
In order to learn more about your training, your work and your work environment, the committee members decided to ask for some additional information. This seemed to be necessary for an in-deep assessment of your application.
우리나라 수면다원검사 정도관리위원회에 수면다원검사 교육이수증에 대한 영문 서류를 요청했으나, 단칼에 거절 당했다. 어쩔 수 없이 수면다원검사 정도관리위원회가 국가에서 공인된 기관이라는 것을 영문으로 준비하여야 했고, 수면다원검사 교육이수증도 자체적으로 영문 번역을 하여 제출했다. 향후로도 수면다원검사 정도관리위원회의 입장은 변할 것 같지 않아서, 서류 전형 통과 시 일차적인 난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SRS에서 추가 자료 마감 기한을 메일에 명시하지 않았음에도 약 2주 정도 기한 이후, 그동안 추가 자료를 낸 사람들에 대해서만 서류 전형의 합격 여부를 알려주고, 자료가 조금 늦었던 경우, 내년에 시험 자격을 다시 주겠다고 메일이 왔다. 이에 대해 ESRS 시험 담당자에게 메일로 영어로 항의하는 과정을 몇 차례 더 거쳐 우여곡절 끝에 시험 자격을 얻어냈다.
ESRS 교과서를 준비하여 시험 공부를 시작한 것은 가장 바쁜 시기인 가정의 달 5월의 절반을 넘긴 5월 25일부터였다. 마지막 시험이 전문의 시험으로 약 10년 전이었고, 이후로는 시험 칠 일없이 살아왔기에, 혼자서 할 엄두는 나지 않아서, zoom을 이용하여 그룹 스터디를 진행하기로 했고, 평일 저녁 9시, 1주에 한 번씩 시험 스케줄을 짜서 공부를 시작했다. 유럽식 영어로 된 ESRS 교과서는 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으로, 일부 챕터를 과감히 버렸지만 처음 수면 생리 부분부터 머리가 지끈거렸고, 하면 할수록 과연 이 방대한 내용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이 많은 내용들을 혼자서 공부하여 우리나라 1호 ESRS 수면 전문가 자격증을 따낸 최지호 교수님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에 믿을 것은 의대생 때부터 느꼈지만, 결국 족보였다. 다행히도 2020년, 2021년에 시험을 친 이비인후과 선생님들이 부분적으로 복원해 준 문제들이 있어서 이론 파트(theoretical part) 시험에 있어서는 큰 도움을 받았다. 임상 파트(practical part)에는 수면 단계와 호흡 사건에 대한 scoring 및 수면 검사 결과의 해석과 관련된 문제들이 나왔는데, 오히려 시험일이 가까워질수록 이론 파트보다 임상 파트에 대한 부분이 더 어렵게 느껴졌고, 시간 배분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온라인 시험 방식은 아주 생소했다. Proctor Exam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진행되었는데, 시험 화면인 PC 모니터와 나를 감시할 수 있도록 휴대폰을 내 뒤에 두고 나의 뒷모습이 나오도록 하여, 시험 시간 중 컨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시험이 치뤄졌고, 그 동안 휴대폰은 비행기 모드로 변경하여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받지 못하도록 한 상태였다. 시험 치르기 1주 전부터 이틀 전까지 사전에 Proctor Exam 시스템에 대해 test를 거치도록 되어 있으며, 시험 당일(한국시간 토요일 오후 3시) 약 3시간 30분에 달하는 총 시험 시간 중 책상에 허락 된 것은 빈 종이 및 필기구 하나, 마실 물 한 잔, 그리고 신분 확인을 위한 여권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시험을 시작했는데, 막상 Proctor Exam 시스템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한 시간 정도 컴퓨터 및 휴대폰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면서 진땀을 흘리다가 겨우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시험 문제를 풀던 중, 화면에 disconnection 메시지가 뜨면서 시스템과의 연결이 해제되어 버렸다. 문제가 발생 시 채팅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번 시험은 망했구나 생각을 하고, 시험 시간이 끝난 후 다시 휴대폰의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고 보니, 한국에서 시험을 쳤던 모든 분들이 그런 문제를 겪었고, 최종적으로 ESRS에 문의해 본 결과, 프로그램의 테크니컬 에러였던 것으로 확인 후, 아시아 지역에서의 재시험 일자를 3주 뒤로 공지 받았다. 시험 날짜를 기준으로 거의 모든 주요 일정을 이후로 미뤄둔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재시험 날짜가 부비동 내시경 해부 실습 심포지엄을 하는 날짜와 겹치면서 심포지엄 주관 후 헐레벌떡 일정을 정리하고 와서 병원에서 온라인 시험을 치뤄야 했으나, 프로그램 시작 시간을 간발의 차로 놓치면서 다시 시험을 못치르는 사태에 이르렀다. ESRS 시험 담당자에게 통사정을 하여, 다행히 한 번 더 담당자와 1:1 대면 하에 온라인 시험을 치를 기회를 얻었는데, 다시 온라인 시험을 치르라면, 글쎄…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절레절레… 차라리 개인적으로는 학회에 참석을 하면서 on site로 시험을 치르는 쪽이 훨씬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2020년, 2021년 온라인 시험을 치를 당시에는 없었던 문제이기 때문에 올해만 해당되는 일일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시험 중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꼭 화면 캡처를 하면서 증거들을 모아두고, 추후 근거 자료로 사용하길 바란다.
세계 3대 수면학회는 유럽수면학회(ESRS), 미국수면학회(American Academy of Sleep Medicine, AASM), 그리고 세계수면학회(World Association of Sleep Medicine, WASM)로 알려져 있다. 세 학회의 수면의학 전문가 시험을 모두 합격했던 최지호 교수님의 글(ENTian 2019년 1월호)에 따르면, 미국수면학회는 현재 다른 나라 의사에게는 시험의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있고, 세계수면학회는 학회장에서 on site로만 시험 응시가 가능하다. ESRS는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수면의학 전문가를 위해 시험의 문호를 개방하고 있으며, 특히나 COVID-19의 영향으로 2020년 이후 학회장에서 치르는 on site 시험 외에 온라인 시험도 가능하게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유럽 수면학회(Sleep Europe)는 짝수 년도에 개최되는데, 2024년 9월 24일부터 27일 스페인의 Seville에서 열릴 예정이고, 이때 학회 참석 예정이라면, on site로도 시험을 치는 것이 가능하며, 2023년 ESRS 시험은 2023년 9월 23일 온라인으로 실시될 예정이다. 2023년 1월 31일까지 홈페이지(https://esrs.eu/sleep-medicine-examination/)를 통해 시험 신청을 받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서둘러 신청하길 바란다.
난관들에 대해서만 서술했지만, 확실히 시험을 치르고 나니, 수면의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전에는 코끼리 코만 더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코끼리 모양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것 같다. 이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더불어 같이 그룹 스터디를 하면서 얻게 된 선생님들과의 인연은 앞으로 수면과 관련된 환자들을 볼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